신경숙 『외딴방』 - 그렇게 힘든 글쓰기
책만지기/한국소설 2010/08/19 19:31 |
이야기는 하계숙의 통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살 파먹는 글쓰기
작가 신경숙의 외딴방. 두꺼운 소설책 한 권을 엮어낼 만큼 그 안에 갇혀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그녀는 외딴방의 문을 굳이 열고 싶지는 않았다. 외딴방을 연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온 내장을 게워내는 행위와 같았기 때문이다.
왜 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방을 생각하면 한없이 외졌다는 생각, 외로운 곳에, 우리들, 거기서 외따로이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인지.
지독한 거짓말쟁이가 아닌 이상 소설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한다. 아니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상상력으로 서사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자유로운 상상 밑바닥에는 진득하게 눌어붙은 일상의 경험이 깔려 있다. 그렇게 소설가란 끊임없이 사실과 허구를 씨줄과 날줄삼아 그럴듯한 옷을 만들어 내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죄책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그들의 원죄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끊임없이 진실을 말해야 하는 고통이고, 또 반대로 그것을 말할 수 없는 정해진 패배이기도 하다.
<모먼트 오브 트루스>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다. 단계별로 나뉜 21개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 거짓말 탐지기가 진위여부를 판가름해준다. 그 결과에 따라 진실의 대답이 많이 나올수록 많은 돈을 받으며, 거짓이 나오면 그동안 쌓인 상금이 날아가는 방식이다. 상금은 200만원에서 최대 1억이다. 악! 그렇게 돈을 벌기가 쉬운가? 라고 생각하지만 그간 2000만원의 단계를 넘어선 사람이 없었다. 왜 그럴까? 점점 높아져가는 ‘수치심’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간직하던 비밀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당신은 1억을 위해 자신의 추악한(?)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그럴진대 대중에게 끊임없이 읽혀야 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것은 그저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글쓰기는 얼마나 거짓되기 쉬운가? 충분한 배려와 괴로움으로 짜낸 신경숙의 소설에 마저도 이에 관한 고백이 나온다.
내가 그때 큰오빠와 외사촌과 본 영화는 <부메랑>이었지만 나는 그 영화가 싫었다. 그것이 현재의 나에게 문제로 작용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키지 않는 것과는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조차 안하는 것. 왜 내키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려고도 그것에 설득당하려고도 안 하는 것. 그 폐쇄성이 다른 각도로 삶을 바라보는 걸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메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금지된 장난>을 삽화로 넣은 건 오로지 싫다는, 그 영화가 내 취향에 맞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243쪽)
신경숙은 『외딴방』을 자기성찰의 과제로 삼은 듯 보인다. 열여섯의 ‘나’에서 열아홉의 ‘나’까지 거슬러가는 이야기에 소설가가 된 '나'가 불쑥불쑥 끼어든다. 소설가의 ‘나’가 외딴방의 ‘나’에게 끊임없이 악수를 청하지만 그것은 쉽게 화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신경숙 역시도 그렇게 쉽게 화해할 양으로 과거와 만난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니까 많이 써야지, 하지만 넌 아니다. 니 글쓰기는 니 살파먹기야. 한꺼번에 너무 많이 파내면 네가 아프다.” (265쪽)
산업의 일꾼으로서의 ‘나’가 겪는 이야기
80년대를 살아가는 외딴방의 ‘나’는 산업의 일꾼으로서 개인적인 희망을 공장에 저당 잡히고, 나사를 조임과 동시에 생성되는 욕망을 끊임없이 컨베이어 벨트에 흘려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작가가 되기를 갈망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37개의 외딴방에는 각기 다른 희망이 꽉꽉 들어차 있었을 것이다. 외사촌은 새를 찍는 사진작가가, 셋째 오빠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가가 되고 싶었고, 같은 반 친구 미서는 이해하지도 못하는 헤겔을 읽음으로써 다른 친구들과 구분되고 싶어 했다.
‘나’는 외딴방에서 꿈을 이룬 유일한 인물이다. 위장취업으로 공장에 들어가고 노조위원장의 도움으로 산업체 학급에 입학하고, 학교에 다니기 싫지만 은사 최홍이 선생님의 도움으로 수업시간에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필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대학에 진학하여 마침내 작가가 되는 영웅적 서사를 이루어냈다. 이것은 가히 기적이라 할만 했고, 기적의 뒤편에는 그 흔한 희망마저 품지 못한 큰 오빠가 있었다. 그리고 큰오빠만큼은 아니지만 외사촌이 있었고, 같은 반 친구들이 있었으며, 공장에서 함께 일한 노동자들과 그녀가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못했던 노조의 노조원들이 있었다.
참고 참았던 큰오빠의 울분이 터진다. 정말 왜 그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시퍼런 청춘인 그의 어깨엔 장남이라는 책임감이 천형처럼 짊어져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 대신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고, 방위병이면서도 돈을 벌어야 하고, 좁은 방에서 여동생들과 함께 불편한 잠을 자야 하는 장남의 울분이 셋째오빠의 코에 코피를 터뜨린다. 큰오빠는 부엌에 서서 발을 동동거리는 외사촌과 나를 향해 꺼져버리라고 한다. (247쪽)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나’는 그들에게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라는 하계숙의 말. 우리는 이 말의 숨은 뜻을 알 수 없다. ‘나’를 힐난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 의미 없는 농담인 건지. 그 말의 경중이 어떻든지 간에 ‘나’는 죄의식을 고해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꽁꽁 닫아 놓았던 외딴방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희재 언니
왜 하필 희재언니 였을까? 어째서 큰오빠가 아닌 희재언니 였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의 곁에 살았지만 같은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도 아니었다. 한번도 다툰 기억이 없다. 싸워야 할 일이 우리에겐 없었다. 그녀는 마음 속에 욕망이 없었다. 그녀가 보살펴줘야 한다는 그 사람과 동생의 일을 제외하면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해야겠다든지, 무엇이 돼야겠다든지 무엇이 좋다든지,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331쪽)
‘나’와 희재언니는 서로 친했다는 것 외에 별다른 욕망의 얽힘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글쓰기로 희재언니에 도달하려 한다.(197쪽) 그리고 과거의 외딴방을 복원하려 한다. 희재언니는 외딴방을 탈출하고자 하는 이렇다 할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다른 이들처럼 희망이 있는 것도 무엇이 되고자하는 열망도 없다. 그렇기에 희재언니는 ‘나’에게 있어 외딴방 그 자체였던 것이다. 모두가 떠나도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모두가 사랑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은 계급에 기인한다. 공장에 다니지 않는 ‘나’, 대학생인 ‘나’여야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외딴방 밖에서의 사랑을 꿈꾼 그들이었기에 여전히 외딴방에 머물러있는 그들의 사랑은 모두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외사촌은 공고생에게, 오빠는 도시의 예쁜 여자에게, 나는 대학생이 된 창에게 실연을 당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절절하다거나 죽을 만큼 힘들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암시할 뿐이다. 지났을 때 절절하지 않은 사랑은 단순히 청춘의 상흔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실패는 외딴방을 떠나기 위한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희재언니의 사랑은 달랐다. 사랑의 실패는 다음 사랑으로 나가기 위한 또 하나의 시작이지만 그녀의 사랑은 바로 그 곳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끝나야 했다. 그녀에게는 외딴방 이외의 세계가 없기에.
희재언니의 죽음과 함께 외딴방의 문을 닫아버린 것은 ‘나’였다. 그 진실을 대면할 용기가 없는 ‘나’는 서른 셋이 되기까지 외딴방을 방치했다. 그 외딴방이 하계숙의 전화와 함께 상기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성공할 수 없는 작업에 착수한다. 진실을 글로써 드러내는 것. 그리고 외딴방의 문을 열어 죽은 희재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이름도 없이, 물질적인 풍요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이, 그러나 열 손가락을 움직여 끊임없이 물질을 만들어내야 햇던 그들을 나는 이제야 내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나의 내부에 퍼뜨린 사회적 의지를 잊지 않으리. 나의 본질을 낳아준 어머니와 같이, 익명의 그들이 나의 내부의 한켠을 낳아주었음을... 그래서 나 또한 나의 말을 통하여 그들의 의젓한 자리를 세상에 새로이 낳아주어야 함을... 1995년 9월 10일에. (4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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