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보통, 『불안』
책만지기/철학 2012/04/17 00:12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채 다 읽기도 전에 구매한 책이다. 회사 엠티 날 아침부터 설사병에 걸려서 혼자 KTX를 타야 했던 슬픈운명에서 허우적거릴 당시 용산역에서 김연수의 신간과 함께 집어들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느낀 발랄한 통찰에 흥미를 갖고 있던 차라 손을 뻗는데 그다지 망설임이 없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과 비견될만한 것은 아니지만 라이트급 챔피언 같은 그의 저작은 가벼운 무거움으로 지적인 삶의 통찰에 빠져들기에 제격이었으며, 혼자만의 기차여행에 든든한 동반자가 돼주었다.
왜 인간은 불안해하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꿰뚫는 물음이다. 불안의 계보학. 불안을 한마디로 정의해보자. 불안은 ‘사랑 받지 못할까 겁내는 마음’이다. ‘불안’은 세상 대부분 불행의 시작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더 사랑 받으려는 마음은 전쟁을 촉발시키고 승리여부에 따라 계급을 낳았는데, 여기서부터 ‘거대한 불안’이 시작되었다. 남성의 역사에서 전쟁에서의 승리만이 여성의 사랑을 쟁취할 수단이었던 시대에는 야만적인 짐승남들이 사랑을 독차지했던 반면 문화가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지적이며 교양 있는 남자들이 새로운 섹시남으로 거듭나게 된다. (빅뱅이론의 레너드 대사가 떠오른다) 그 사이 사이에 그 사랑을 증명해줄 화폐가 등장하며, 곧이어 그것이 사랑을 대신해준다.
이제 가난한 이들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치부된다. 돈이 많은 사람들 즉 사랑이 충만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 사랑 받아선 안 되는 이유를 견고하게 만들어나가고, 가난한 이들은 사랑이 부족하여 자신감 없는 이들이 그렇듯 부자들의 이유를 자신에 알맞게 체화한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일면 끔찍한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랑 받지 못하는, 정확히 돈이 없어서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안이 모여 불행을 만드는 사회말이다.
인간의 사소하고도 사소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은 다양한 것을 사유한다. 그것은 예술, 죽음, 기독교 등의 실존적이면서 문화적 양태로 나타나는데, 이것에 몰두함으로써 우리는 현실적인 불안을 잊기도 한다. 무엇이 현실인지 헤매는 동안 그나마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나는 이런 질문을 한다. 아무리 인문학적 사유에 골몰해서 삶의 측면을 이해하거나 새롭게 깨닫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간의 한 공간만을 차지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삶의 일부를 채워 지적, 영적인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 즉 합집합의 일부분이 아닐까? 오래 고민해 제작된 나의 사유가 아주 작은 일상적 충돌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불행과 행복은 부동산적 의미를 갖는다.
보헤미아
보통이 마지막 챕터에 ‘보헤미아’를 집어 넣은 것은 그것이 가장 현실에 근접해 있으며 불안에 벗어나있는 인간형태라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세기 초 서구와 미국에서 새로운 집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박하게 옷을 입고, 도시의 싼 지역에 살았고, 책을 많이 읽었고, 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다수는 우울한 기질이었고, 사업이나 물질적 성공보다는 예술과 감정에 충실했고, 가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생활을 하기도 했고, 여자들은 단발이 유행하기 오래 전에 단발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325쪽)
요즘. 보헤미안은 하나의 이미지로서 소비된다. 내가 보기엔 오늘날 많은 이들이 보헤미안의 이미지를 향해 정자가 난자로 돌진하듯 달려간다. 정작 착상이 되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일은 얼마 없다. 현대사회는 이미 불안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불안은 일종의 쾌락이며, 이것으로 군집이 이루어진다. 남의 불안과 나의 불안을 먹으면서 내 안의 괴물은 커지고 군집의 괴물도 커진다. 어느 사회는 안 그랬을까? 글쎄 어느 사회의 구성원이 돼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가장 자명한 것은 “나는 불안하다. 고로 불행하다”일 뿐이다. 그래서 보헤미안의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한 열망은 더더욱 커진다.
보헤미안은 모든 것을 재규정하는 존재이다. 들뢰즈의 욕망하는 기계처럼 욕망하는 것으로서 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 탈주하는 유목적 존재. 보통의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흡사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착각을 하게된다,. 보헤미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되고 싶다. 원인도 알고 메커니즘도 안다면 그저 용기만 내면 되는 것일까? 용기가 답이다. 헌데 용기만큼 분석하고 규명해내기도 어려운 감정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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